들어가며
1부 자금성의 황혼
1. 우창봉기
2. 몰락하는 제국
3. 풍운아 위안스카이
4. 구식 군대에서 신식 군대로
5. 철도, 청조를 무너뜨리다
6. 북양함대의 부활
7. 혁명이냐, 입헌이냐
2부 짧았던 공화정의 꿈
8. 신해혁명
9. 중화민국의 건국
10. 2차 혁명
11. 위안스카이, 황제를 꿈꾸다
12. 중화제국의 등장
13. 토원전쟁
14. 간웅 죽다
15. 변발장군 장쉰
3부 군웅, 사슴을 좇다
16. 쑨원, 북벌에 나서다
17. 북양군의 분열
18. 안즈전쟁
19. 반反즈리연합 결성
20. 양호의 싸움
21. 동북왕 장쭤린
22. 제1차 펑즈전쟁
23. 국공합작
24. 뇌물총통 차오쿤
25. 펑톈은 죽지 않는다
26. 제2차 펑즈전쟁
27. 쑨원 서거
28. 반펑反奉전쟁
29. 북방대전
4부 북벌전쟁
30. 북벌 전야
31. 북벌군 출전하다
32. 오색기 대 청천백일기
33. 북벌군의 분열
34. 장제스의 반란
35. 국공합작 깨지다
36. 장쭤린의 반격
37. 장제스 시대 열리다
5부 천하통일
38. 총진군령
39. 노웅, 죽다
40. 천하통일, 그러나 새로운 전쟁
41. 하늘의 싸움
42. 내전과 해군
43. 신군벌 내전
44. 장제스 포위망
45. 중원대전
46. 몽골과 티베트
부록
연대별 주요 사건
청말과 중화민국 시기 중국군 계급제도
중국군 시기별 편제
청말에서 북양 시절까지의 중국 국기와 혁명기
중화민국(1912~1928년의 역대 국가원수
각 성별 인구 현황
군벌 시대의 주요 무기
참고 문헌
찾아보기
현대판 “춘추전국시대”, 군벌 시대의 개막
신해혁명으로 선통제 푸이가 퇴위하고 중화민국이 건국되었을 때, 그 과실을 차지한 쪽은 혁명파가 아니라 청조 내에서도 수구파였던 위안스카이였다. 그는 탁월한 정치가이자 유능한 관료였지만 공화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다시 황제가 되고자 하는 헛된 꿈을 꿨다. 그의 역량은 중국의 위기를 극복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위안스카이가 죽자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각지의 군사 실력자들이 천하 패권을 놓고 싸움을 시작했다. ‘군벌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1922년 제1차 펑즈전쟁 당시 장쭤린과 우페이푸는 서로를 향해 ‘군벌’이라고 불렀다. 장제스는 북벌전쟁에 나서면서 북방의 군사 지도자들을 ‘군벌’이라고 불렀으며, 공산당은 그 장제스까지 포함해 죄다 군벌로 치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을 향해 군벌이라고 부르면서도 자기 자신은 군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국 근대사에서 ‘군벌’이란 중국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으며 국가와 민족에 큰 해악을 끼친 악당이라는 것이 오랜 통념이다. 실제로 군비 확보에 혈안이 되었던 많은 군벌들은 총칼을 이용해 온갖 가렴주구를 일삼았다. 특히 폐해가 가장 심했던 쓰촨성의 경우, 심지어 100년 뒤에 낼 세금까지 미리 징수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벌들이 폭정을 일삼았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대표적인 예가 동북왕 장쭤린이다. 그는 제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하는 마적 출신이었지만 아편 밀매를 금지하고, 교육을 보급하고, 근대산업의 육성에 힘써 동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광둥 군벌 천중밍은 민중 계몽가였다. 산시성 군벌 옌시산은 낙후한 그곳을 발전시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모범 성으로 만들었다. 윈난 군벌 룽윈은 민주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한때 중원을 호령하던 군벌 우페이푸는 대표적인 반일 민족주의자였다.
대개 군벌 내전이라고 하면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처럼 무법천지 세상을 연상하게 된다. 이 나라들은 질서가 무너지면서 정치와 경제가 마비되고 나라 전체가 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