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석산 저자의 “내 책을 말한다”
이 땅에서 철학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대체로 ‘주책없이’ 난해하다는 것이다. 철학적 문제가 무엇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철학이라고 분류된 책은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철학’ 하면 골치 아픈 것이라는 선입견이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나는 두 가지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하나는 이 땅에서 철학적 문제를 잘못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을 위한 철학서가 일정 수준의 재미와 흥미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철학적 문제 설정의 잘못은 지금 우리의 당면 과제들이 철학적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잘 알 수 있다. 가령 이 책을 예로 들어보자. 해방 후부터 계속된 한국의 정체성 문제는 한국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이 의미 없다고 말할 이 시대의 지식인이 얼마나 될 것인가? 또 이것이 절박한 질문임을 부인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의 정체성을 주제나 제목으로 하는 단행본은 이 책이 처음이다. 나는 책을 쓰기 전에 참고자료를 찾았다. 선학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편적인 글들은 있었지만,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의아하고 당혹스러웠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 쓴 책은 많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다룬 책은 없었던 것이다. 철학이 이 땅에서 외면당하는 것은 독자 탓이 아니라 문제를 잘못 설정하고 있는 철학자들의 탓이다.
이 책은 서점에서 다양하게 분류되어 있다. 인문학에서 ‘동양철학/한국철학’으로 또는 ‘한국학’ 으로, 그런가 하면 ‘사회/역사, 지리’로도 분류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이 ‘한국철학’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사회 분야의 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사상’이란 부류에 넣고 싶다. ‘한국철학’보다는 ‘한국사상’이나 ‘사상’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