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불행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1 나와 타인의 의지를 파괴하는 방법 : 사람은 무엇으로 일하는가
2 애착과 확증편향 : 그 사람, 사물, 생각에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3 화성에서 온 돈, 금성에서 온 피자, 목성에서 온 칭찬 : 돈은 생각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
4 죽음, 관계 그리고 의미 : 불멸에 대한 광기 어린 갈망, 그리고 모든 것을 정복하는 사랑
에필로그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대답
내 삶을 채우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법
“삶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의미와 목적의 부재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행복이 아닌 의미를 찾는 능력이 필요하다.”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는 의미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다. 시시포스의 노동이 그토록 불행한 이유는 돌을 언덕으로 밀어 올리는 과정이 힘겹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의 무의미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채우는 ‘의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사람과 사물과 아이디어를 만나게 된다. 그중 어떤 것에 우리는 의미와 애착을 느끼게 되는 걸까? 그리고 그 의미를 늘려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들은 대상에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투자할수록 강한 주인의식을 느끼게 되고 결과물에 대한 애착과 만족감도 더 크게 느낀다.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형체가 있는 사물은 물론 아이디어처럼 형체가 없는 것에도 똑같이 애착을 느낀다.
-‘애착과 확증편향’ 중에서
우리는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결과물을 사랑하게 된다. 결과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면서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의미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우리가 땀 흘려 노력할 때 비로소 의미는 생겨난다.
불멸에 대한 갈망, 그리고 모든 것을 정복하는 사랑
어떤 영웅과 성인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서사시에 다른 결말은 없다. 모두가 죽는다. 그렇다면 죽음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람들은 죽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왜 지금 의미를 찾고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걸까? 우리가 필멸의 존재임을 생각하면 의미를 향한 강렬한 욕구는 일견 합리적이지 못한 충동이나 동기로 보일 수 있다. 도대체 당신이 죽고 난 후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무슨 상관인가? 왜 많은 사람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걸까. 이 욕망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