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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그러던 어느 날
저자 전민화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19-06-05
정가 14,800원
ISBN 9788954656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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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쪽으로 바람 쪽으로 줄곧,

삼각김밥에 단맛 우유로 단출한 점심을 보내는 여자다. 상사의 자잘한 짜증에도 별로 영향받지 않는 멘탈을 가졌다. 퇴근길 대중교통은 언제나 아수라장이고, 흥분과 열기로 소란스러운 밤거리지만 그저 지나쳐 집으로 향할 뿐이다. 미끄러운 광고지 때문이었는지 공사 현장의 허술한 관리 때문이었는지 여자는 예기치 못한 부상을 입고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화분 하나가 배달된다. 용서해 달라는 (아마도 지난 애인의 편지와 함께. 목발을 짚은 채로 달걀을 떨어뜨렸을 때도 성내지 않고 TV 쇼를 보면서도 크게 웃지 않고 몇 가지 약병이 곁에 놓인 침대에서도 씩씩하게 잠들던 그이기에, 처음으로 주먹을 부르쥐고 눈썹을 꺾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꼴도 보기 싫어 구석에 던져두었지만 축 처진 줄기를 보니 여자는 어쩐지 미안해진다. 볕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주고 가끔씩 물을 흠뻑 주니 화분은 힘을 내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고 하루하루 몸을 키우는 식물에게 어느새 처음의 화분은 비좁아 보인다. 큰 화분으로 옮겨 주고 나니 작은 화분이 빈다. 사은품으로 딸려 온 씨앗이 있어서 손에 흙이 묻은 김에 그것도 심어 본다. 이럴 수가! 초록은 성실하게도 새 잎을 내었고, 여자의 몸속에 어떤 힘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만화방창한 순간과 우리의 다음 날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필요한 종류의 영양제를 구입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갈색 화분 속 식물의 도톰한 잎들이 유난히 빛났다. 더 좋은 균형을 위해 가지를 잘라내고, 떨어진 가지들을 물꽂이해 새 뿌리를 내고, 화분에 골고루 바람을 쏘이기 위해 여자의 시간과 공간에 질서가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꿈을 꾸었다. 훌쩍 트럭을 몰고 떠나기 하루 전날 밤이었다.
붉게 그을린 피부와 덜 정돈된 세간, 굵은 땀을 흘리는 여자의 얼굴은 그 삶의 만개의 순간을 모두에게 알린다. 결국 운이 좋았던 어떤 사람의 특별한 날에 대한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