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역사 공부』
2권 5·18민주화운동
머리말
1장 무너지는 유신체제, 시간은 광주로
12·12 사태와 전두환의 등장
짧았던 서울의 봄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2장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분노하는 시민들
집단 발포와 도청 탈환
절대공동체가 만든 대동세상
남파간첩 조작
도청에 남은 사람들
그날, 그 사건을 무엇이라 명명해야 하나
3장 산 자의 기억
우리를 기억해주십시오
살아남은 자의 슬픔
5·18 이후의 민주화운동
끝없이 광주를 기억하라
5·18민주화운동을 더 알기 위해 참고할 자료 / 5·18민주화운동 연표
5·18민주화운동, 젊은이들의 인생을 바꾼 사건
"끝없이 광주를 기억하라"
한홍구 선생 스스로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이라고 평가하는 5?18민주화운동은 저자뿐 아니라 당시 많은 젊은이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군대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을 학살하고 철저히 패배시킨 뒤 결국 권력을 거머쥔 사건. 그 학살의 주역이 1980년대 내내 권력자로 군림했기에 젊은이들이 광주의 기억에서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이후 부침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진전시켜온 것은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민주화 역사에서 가장 장엄한 패배로 기록될 사건이다.
1979년 부마항쟁에 이어 10?26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살해당하자, 20년 가까이 한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권력에 급격한 공백이 생겼다. 이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학생과 신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계엄군이 충돌했다.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났지만 계엄군의 강경한 태도에 대부분 사그라들었는데, 한곳에서 유독 끈질기게 저항이 이어졌다. 바로 광주였다. ‘왜 광주였나’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 연구가 있었으나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광주 시민들이 진압에 굴하지 않았고, 계엄군은 계속해서 더 큰 폭력을 광주에서 행사한 것만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각성’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무고한 희생자들을 목격하며 직접 집회에 나선 시위대뿐 아니라 영문을 모른 채 계엄군에 쫓겨 도망가던 시민들까지 죽음을 불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5월 18일 공수부대의 만행은 민중항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변화해갔”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은 사람들
5·18의 ‘기억과의 투쟁’은 현재진행형
광주의 시위대와 계엄군이 충돌한 5월 18일부터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점령되고 시민군이 사살?체포된 5월 27일까지, 광주는 항쟁의 현장이자 ‘대동세상’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