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가장 대표적인 내전이자 가장 폭력적인 전쟁, 한국전쟁
세계적 인류학자 권헌익, 경험주체의 관점으로 복원해내다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됐지만 한반도에서는 냉전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남북관계에서도 북미관계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으로 동서대결의 냉전이 종식된 지 어언 한세대가 지났음을 상기하면 놀라운 사실이다. 남북 분단과 휴전 상태가 이어지면서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다. 한편 한국전쟁은 하나의 전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전쟁이 결합한 것이었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서로를 부정하는 두 정치세력이 각자의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이었고, 냉전을 지배했던 두 국제적 세력 간에 벌어졌던 전지구적 갈등의 일부이기도 했으며,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진 국제분쟁이기도 했다. 저자는 무장한 두 군사집단 간의 교전이라는 관습적인 전쟁사의 시각으로도, 초강대국 사이의 세력균형으로 보는 냉전사적 시각으로도 한국전쟁의 실체를 오롯이 알 수 없음을 강조하며, 세계사적으로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내전인 한국전쟁을 ‘경험세계’의 인식으로 마주해야 그 실체를 알 수 있음을 설파한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이 ‘작은’ 전쟁이 세계사의 넓은 지평에 미친 영향이 엄청나지만 정작 한반도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되고 말았다. 그 망각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작용이라기보다 한국전쟁 당시 개개인의 삶에 미친 폭력의 기제가 전후에도 가족/친족/공동체라는 ‘관계’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작동했기 때문에 애써 부인하고 잊으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대중의 한국전쟁 경험은 문학작품, 자서전, 증언록 등을 통해 최근에야 비로소 폭넓게 공개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3년에 걸친 이 전쟁이 군인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민간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경험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전쟁의 경험세계를 복원하고 그 이론적 근거를 모색한 노작이자, 하늘이 무너지는 시대에 존엄을 지키려 노력했던 경험주체들의 기적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