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때문에 집과 가족을 잃고 깜깜한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사람들에게 라미는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줘요.
바이올린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알고 있거든요.
왕에게 끝까지 맞선 하얀 말이 들려주는 바람의 노래를요.
어디든 가닿을 수 있는 자유의 노래를요.
사람들은 언제쯤 자신이 살던 곳으로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을까요?
★ 국제 인권 단체 ‘국제앰네스티’ 추천 도서 ★
살기 위해 한배를 탄 사람들
한 무리의 난민이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위 작은 배에 몸을 실었다. 여섯 살과 네 살 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 죽은 아내가 키우던 개를 품에 안은 노인, 군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달아난 형제,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라미. 모두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작은 배 하나에 운명을 걸었다. 사람들은 아직 전쟁이 실감나지 않는다. 눈부신 아침 햇살 속에 서 있는 엄마를 볼 수도 있고, 흙먼지 날리는 골목에서 공을 찰 수도 있고, 활짝 웃는 아내를 떠올릴 수도 있는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전쟁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건 두 겹의 비닐 사이에 든, 허리띠의 버클이나 머리핀만으로도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공기가 전부다. 아니, 하나 더 있음을 깨닫는다.
살아 있음을 서로 확인하게 해 주는 존재, 자신의 현재와 마지막을 기억해 줄 수 있는 존재. 바로 함께 배 안에서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밤바다의 어둠과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두들 소년에게는 낯선 얼굴이었다. 소년은 이 낯선 사람들과 함께 떠났다. 좁은 배에 갇힌 채 시간과 공간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또 다른 세상의 안전한 항구에 닿기를 바라면서. 찾아볼 지도도 없고, 헤쳐 나갈 노도 없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