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거슬러 읽기의 모범을 보이다
그렇다면 인공 지능의 시대라는 21세기에, 그것도 (저자가 곳곳에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대로 봉건주의의 폐해에 오래 발목을 잡혀온 우리가 남의 나라 옛적 봉건 사회의 교과서를 왜 여전히 기웃거려야 할까. 말할 나위 없이 봉건 시대와 중국의 울타리 안에 갇힌 전언(message과 가르침이 『천자문』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부이기는커녕, 저자에게 『천자문』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 무수히 많은 것을 말해주고 생각케 하는 ‘욕망의 텍스트’다. 사람은 왜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가? 어째서 그토록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갈구하고 이름(名에 집착하는가? 그러면서도 때로는 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적한 곳에 파묻혀 유유자적하기를 고대하는가? 『천자문』이 욕망의 텍스트인 것은 인간의 저 다채롭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욕망들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그 욕망을 통어하고 인도하기 위해 옛 사람들이 궁리해낸 중용中庸, 예禮, 오상五常(사람에게서 흔들려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정신적 기둥인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같은 이념적 지침들이 흩뿌려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자문』에 담긴 인간적 욕망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욕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그리고 그 욕망에 대응하려 고안된 윤리적 방책들이 오늘에 와서 쓸모없어졌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면, 『천자문』을 우리 시대의 문제들과 대결하기 위한 길잡이나 연장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천자문은 힘이 세다』가 공들여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곧 『천자문』이 던져놓은 화두를 우리 시대의 여건 속에 끌어들이고, 한편으로는 원래의 가르침을 거슬러,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맥락을 넓혀서 사유와 성찰을 펼치는 일이다. 예컨대 남의 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망단피단罔談彼短’의 당부를 거슬러 “단점들을 말하는 사이에 우리는 진실을 경험하게 된다”(/ p.209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전자의 경우다. 그런가 하면 과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