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길이 된 사람, 권정생
모진 가난 속에서 가혹한 병을 안고 살면서도
자신 안에 갇히는 것을 거부한 사람.
처음엔 “세상에 태어났다가 그냥 죽는 게 억울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개인의 운명을 시대와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면서
보다 넓고 깊은 세계로 나아간 사람.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 서로 나누고 아끼면서 만들어 가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 자연의 질서에 대한 경외와 존중으로 어느덧 우리 아동문학의 길이 된 사람.
출간 10년을 앞두고 권정생 선생의 <용구 삼촌>의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판형을 시원하게 키우고 표지도 새로 단장했습니다.
<용구 삼촌>이 서 있는 자리
권정생 선생님은 쉰네 살이 되던 1991년에 <용구 삼촌>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을 쓰기 전, 선생님은 《몽실 언니》 《초가집이 있던 마을》 《점득이네》 같은 굵직한 소년소설들을 10여 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참혹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사람들 가슴에 깊이 새겨진 상처를 다룬 장편이었습니다. 이들 작품에 비하면 <용구 삼촌>은 소품에 가깝습니다. 글의 분량도 그러려니와 사건의 구조도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하지만 이 짧은 이야기에는 앞서 발표된 장편과 다른 차원의 압축된 서정과 여운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을 전후로 하여 그의 작품들은 또 다른 갈래를 만들어 갑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와 현실에 대한 생각을 보다 직접적인 산문 형식으로 발언하는 일이 잦아집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과 그의 아들 예수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보고 듣고 느끼며 갖는 절절한 체험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장편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나, 아이들 생활에 보다 밀접하게 다가간 단편동화집 《짱구네 고추밭 소동》에서처럼 소재의 외연과 표현 형식이 한결 넓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