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는 철학서가 술술 읽히는 힘은 무엇일까?]
고전번역가 천병희교수가 번역한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점에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철학 전공자의 번역처럼 깨알 같은 주석은 없지만 본문이 술술 읽힌다는 점을 누구나 인정한다. 물론 플라톤은 거대한 우주론보다는 도덕철학, 즉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문학작품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옮긴이가 문학 전공자인 점이 어렵다는 철학서를 술술 읽을 수 있게 하는 건 아닐까? 플라톤 대화편 말고도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비롯한 50여 편에 이르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을 원전 번역한 내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천병희의 대화편은 전공자들 또는 진지한 독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던 플라톤의 대화편을 일반 독자들도 읽게 만든다.
옛날 부자의 재산 규모를 표현할 때,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근동의 사람들이 자기 집에 갈 수 없다는 식의 수사가 동원되었다. 고전과 지식의 영토이지만 서양 고전을 탐독하려는 독자라면 번역가 천병희를 거치지 않고는 자신의 집을 만들기 힘들게 되었달까, 이런 수사가 등장해도 무방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