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4
첫째 마당
추모(주몽의 고구리(高句麗 건국 이전의 나라이름
1. 『일주서(逸周書』의 고이(高夷에 대한 논의·19
2. 공안국의 『상서(尙書』 전(傳에 나온 구리(駒麗·26
3. 부여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고리(高離·28
4. 옛 조선(朝鮮과 고구리(高句麗?구리(句麗·35
둘째 마당
추모(鄒牟의 건국과 나라이름 고구리(高句麗
1. 고구리(高句麗 건국과 나라이름 고구리(高句麗·49
2. 고구리(高句麗 시조의 이름은 추모(鄒牟·60
3. 구리(句麗와 고구리(高句麗에 대한 북한의 새로운 학설·70
셋째 마당
고구리(高句麗 유물에 나타난 고리(高麗
1. 충주고리비(中原高麗碑의 고리(高句麗·82
2. 불상에 쓰인 나라이름 고리나라(高麗國·83
3. 『삼국유사』 「왕력(王曆」의 고리(高麗·88
4. 양(梁나라 직공도의 고리나라(高麗國·92
5. 7개 나라 인물이 그려진 은합의 고리(高麗·90
째 마당
나라이름을 고리(高麗로 바꾸기 이전의 25사(二十五史 기록
1. 『한서(漢書』의 구리(句驪ㆍ고구리(高句驪·101
2. 『후한서(後漢書』의 구리(句驪ㆍ고구리(高句驪·103
3. 『삼국지』의 고구리(高句麗와 구리(句麗·109
4. 『진서』의 고구리(高句麗와 구리((句麗·117
다섯째 마당
나라이름을 고리(高麗로 바꾼 뒤의 25사(二十五史 기록-남북조시대(420~589
1. 『송서(宋書』의 고구리(高句驪와 고리(高麗·136
2. 『위서(魏書』에 기록된 고구리(高句麗와 고리(高麗·146
3. 『남제서(南齊書』의 고리(高麗·160
4. 『양서(梁書』의 고구리(高句驪와 고리(高麗·163
5. 『진서(陳書』의 고구리(高句驪와 고리(高麗·167
6. 『북제서(北齊書』의 고리(高麗·168
7. 『주서(周書』의 고리(高麗·170
8. 남북조시대 조공외교의 특성·171
여섯째 마당
나라이름을 고리(高麗로 바꾼 뒤의 25사(二十五史 기록-수(隋ㆍ당(唐
1. 『수서(隋書』의 고리(高麗·191
2. 『
이 책은 <고구리고리사 연구총서>(총6권 가운데 둘째 권으로, 고구리가 장수왕 때 나라이름을 고구리에서 고리로 바꾼 사실을 증명해낸 학술서이다. 2007년 논문을 바탕으로 『한서』를 비롯한 25사를 1년 넘게 철저하게 분석하여 논리를 강화하였다. 그 결과 16개 사서에 나오는 고구리(高句麗 관련 나라이름 1,209회 가운데 고리(高麗가 1,002번이나 나와 전체의 82.9%를 차지한다는 것을 밝혔다. 아울러 나라이름을 바꾼 시기를 장수왕이 즉위한 413년으로 확정한 것도 큰 업적이다.
이 문제는 나라이름을 고구리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고구려의 본디 이름 고구리(高句麗?? 참조과 함께 글쓴이가 고구리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제기했던 문제다. 그리고 1998년 『서길수 교수의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 (사계절, 1998에 처음으로 이 사실을 밝혔고, 2007년 나온 「高句麗’와 ‘高麗’의 소릿값(音價에 관한 연구」(??高句麗硏究?? 27에도 실렸다.
여기서 고리(高麗는 왕건이 세운 고리(高麗가 아니고 고구리(高句麗를 장수왕 때 나라이름을 바꾼 ‘고리(高麗’이다. 다시 말해서 장수왕 이전에는 고구리(高句麗, 장수왕 이후에는 고리(高麗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리 705년 전체를 아우르려 하면 고구리(高句麗고리(高麗라고 해야만 되는 것이다.
1장과 2장에서는 고구리의 나라이름 역사 전체를 다룬다. 1장에서는 추모(주몽가 기원전 37년 나라를 세우기 이전에 이미 구리(句麗가 있었고, 추모(주몽가 태어난 부여의 시조 동명은 ‘고리’라는 나라에서 나왔다는 것도 밝힌다. 그리고 2장에서는 추모가 나라를 세운 뒤의 나라이름을 정리하여 나라이름을 역사적으로 조명한다. 3장에서는 고구리(高句麗 시대의 유물이지만 ‘고리(高麗’라고 새겨진 충주 고구리비, 불상을 비롯한 갖가지 유물들을 소개하고, 『삼국유사』에도 고리(高麗로 나온다는 사실을 밝히므로 해서 고구리 시대 이미 고리가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456장에서는 25사 가운데 고구리고리 역사와 관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