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과 함께 태어나는 것일까, 작품이 작가와 함께 태어나는 것일까.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시대 속에서 그의 글과 함께 태어났고, 그의 수많은 글들은 작가 루쉰이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글을 쓴 루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마치 잠깐 밖에 다녀와서 이어 쓸 것 같은 채로 끝이 났다. 병이 났을 때 빨리 낫는 대신 글을 쓸 수 없는 것보다 오래 걸려 천천히 병이 낫더라도 그 사이 글을 쓰는 것을 택할 정도로 루쉰과 그의 글쓰기는 분리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해외의 서적을 번역해 소개하고, 읽고 쓰고, 중국문학을 정리하고, 편지를 쓰고, 소설을 쓰고, 잡지를 만들고, 잡문을 썼다. 루쉰의 아마도 가장 유명한 문장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은 희망을 낙관하지도,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는, 그 어떤 것에 대한 확신과 약속도 하지 않는 루쉰의 정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니컬함과는 다른 ‘강함’. 식민지 중국에서, 혁명 속에서,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지만 젊은이들에게 그 자체로 스승이자 삶의 모델이 되었던 루쉰을 2018년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루쉰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저는 루쉰이 니체보다 좀 더 대단한 것 같아요.”
─철학자 고병권은 말한다. 스승을 뛰어넘는 독법을 보이며 유럽의 니체가 아니라 중국에서만 살 수 있는 니체를 만들어 냈다는 루쉰. 철방에 갇혀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잠들어 있고 누군가는 깨어 있다. 먼저 깨어난 사람은 그저 먼저 깨어났을 뿐이다. 망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철방에서 먼저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루쉰은 철방에 갇혀 다만 먼저 깨어 아직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웠던 사람이다. 그럼, 이제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같이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