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말년
우리는 이런 통념에 따라 예술가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연륜과 지혜, 세상 모든 것을 한데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곤 한다. 초심자의 치기와 발전 단계의 미숙함을 지나 원숙해진 단계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거장이란 칭호는 기교의 과시나 세상과 빚는 불협화음이 아니라 공인된 연륜과 지혜, 깨달음에 대한 칭송이다. 실제로 특별한 성숙의 기운, 평범한 현실이 기적적으로 변용된 화해와 평온함의 기운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렘브란트와 마티스, 바흐와 바그너, 임권택 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적 말년성(lateness이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낸다면 어떨까?(29쪽 사이드의 관심은 바로 이런 말년의 양식이다.
결을 거스름, 말년의 양식
얼마전 개봉한 「카핑 베토벤」은 귀가 먹은 베토벤이 가상의 인물인 악보 카피스트이자 제자 안나 홀츠의 도움을 받아 9번 교향곡 ‘합창’을 무사히 그리고 감동적으로 초연해내는 장면을 묘사한바 있다. 이 영화 전체는 이 장면의 감동과 환희를 위해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이보다 더 인상적인 장면은 안나 홀츠가 베토벤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마차를 타고 달려가는 오프닝 신과 임종 직전의 베토벤을 만나는 마지막 장면이다(영화는 일종의 액자식 구성이다. 베토벤에 대한 애정과 연민, 임종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걱정을 마차 안에서 밖의 풍경을 내다보는 안나 홀츠의 주관적 시선과 마차를 멀리서 포착한 객관적 시점을 혼란스러운 몽타주로 구성한 장면이다. 이때 흐르는 음악이 베토벤 최후의 작품 중 하나인 ‘대 푸가’이다. 「카핑 베토벤」에는 ‘대 푸가’의 초연 장면도 나오는데, 객석의 반응은 9번 교향곡과 정반대다. 연주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자리를 뜨는 귀부인들, 심지어 누구보다 베토벤을 잘 이해하는 제자 안나 홀츠마저도 이 곡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작품이 바로 해결되지 않는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