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거짓말 _ 홍성표
호텔리어를 만나다 _ 안길정
1. 대통령의 광주 도착
안보보고회
영접 준비
경호 선발대
경호 불문율
각하의 옷, 각하의 구두
만찬장의 대통령
도지사가 가져온 조찬 도시락
김계원과 차지철
2. 광주관광호텔
광주관광호텔의 시작
슬롯머신 오락장
칵테일 라운지
나이트클럽
이발소
그림 도둑
월례 조찬 기관장회의
3. 달아오르는 시가지(5월 12일~17일
12일 _ 칵테일 라운지의 기자들
13일 _ 검열 받는 신문과 방송
14일 _ 가두로 나선 학생 시위
15일 _ 분수대에 모인 학생 대표와 교수들
16일 _ 횃불 시위
17일 _ 호텔 주변
4. 처절한 금남로(5월 18일~20일
18일 _ 계엄이 확대되다
19일 _ 호텔 폐쇄와 일본인 기자
20일 _ 금남로의 차량 시위
5. 도청 앞 집단 발포(5월 21일~26일
21일 _ 호텔 앞 대치선
집단 발포
목포대생의 피격
조준 사격
22일 _ 호텔의 방화 위기
23일 _ 고정간첩, 깡패, 흑색선전
24일 _ 자전거로 바람 쐬기
25일 _ 문을 연 가게들
26일 _ 한광수 사장의 편지
6. 계엄군의 호텔 점령(5월 27일~28일
27일 _ 601호 각하의 방에서
헬기 사격의 섬광
계엄군의 호텔 점령
28일 _ 쓰레기차가 실어 나른 것
호텔의 손실액
7. 전두환의 광주 방문
10?26 사건
연초제조창 안보보고회
광주에 온 전두환
8. 망월동 이팝나무
이팝나무의 오월 노래
나의 5?18
해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공간과 높이에서 본 5?18 _ 김정한
새로운 공간과 높이, 새로운 목격자
광주관광호텔은 8층 건물로 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맞은편 오른 측면에는 전일빌딩이 있었다. 5?18이 일어나자 관광호텔은 자체 폐점했지만, 26세의 영업과장 홍성표는 그곳에 남아서 5?18의 열흘을 목격할 수 있었다. 광주에서 관광호텔은 10층 건물인 전일빌딩 다음으로 높았다. 위에서 아래를 보면 아래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시위 군중 속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지난 40년 동안의 모든 증언들과 다르게,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공간과 높이에서 본 5?18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는 왜 40년 만에 기억을 털어놓는 것일까? 사실 31년 전에 증언할 기획가 있었다. 1988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때 조준 사격의 희생자였던 김선호 씨 부인이 국회 증언대에 섰다. 부인은 원통하게 죽은 남편의 마지막 순간을 증언할 목격자로 그를 지명했다. 그러나 홍성표는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양심의 소리가 일었지만, 용기 있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자신이 본 5·18을 거침없이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시기상조다”, “가만히 있어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주변인들의 조언도 있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17년에《전두환 회고록》이 나왔다. 다시 발포 명령은 없었다는 발뺌과 부인이 되풀이되었다. 마침 국방부 헬기사격조사위원회에서 목격자를 찾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의 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5·18을 더는 묻어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진압군이 도청으로 밀어닥친 5월 27일 새벽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사격 목격 상황을 증언했다.
호텔리어 홍성표는 열흘 동안의 5?18을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지난 40년 동안 수백 번 되새겼기 때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