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르네상스를 이끈 위대한 가문!
? 두 번째 부자 가문이 가야 할 길!
? 세 번째 은행업으로 성장하다!
? 네 번째 가문을 일으킨 조반니 디 비치!
? 다섯 번째 진정한 지배자의 힘!
? 여섯 번째 피렌체의 아버지라 불린 코시모 데 메디치
? 일곱 번째 로렌초 디 피에로의 명예와 의무!
? 여덟 번째 르네상스의 고향, 피렌체!
? 아홉 번째 꺼지지 않는 메디치의 불빛!
? 열 번째 메디치가의 업적과 영향!
되짚어 보고 생각해 보고
대한민국의 르네상스, 한류!
메디치 가문의 부활,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
메디치 가문의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는 가문의 이름을 건 은행을 열었고, 은행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귀족보다 평민의 편에 서고, 번 돈을 자신보다는 공익을 위해 기부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조반니는 피렌체 세례당의 청동문 제작자를 뽑기 위한 심사에서 로렌초 기베르티의 청동 조각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감동을 시민들과 나누고자 조반니는 기베르티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베르티가 조반니의 지원을 받아 21년에 걸쳐 제작한 북문의 청동 조각 <그리스도전>은 28면에 걸쳐 신약 성서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후 기베르티는 조반니의 후원으로 동문에 구약 성서의 이야기도 조각했는데, 그 작품이 무려 27년 만에 완성된 <천국의 문>입니다. 조반니는 이렇게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지배자의 힘,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
조반니의 아들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는 평소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고, 먼 길을 갈 때는 평민들처럼 노새를 타고 다닐 만큼 매우 검소했습니다. 코시모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너그럽게 행동하였습니다. 메디치 은행의 성장을 도운 요한23세가 교황의 자리에서 쫓겨나 벌금형을 받았을 때 돌려받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빌려줄 만큼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피렌체의 영주가 된 코시모는 플라톤 철학에 감명을 받아 고대 문서들을 사들였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산마르코 수도원에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코시모는 도서관을 지을 때부터 모든 학자들이 자료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이탈리아 최초이자 유럽 최초의 공공 도서관이었습니다. 코시모는 책을 모으는 것은 물론 플라톤의 책을 번역하는 일도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