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5
1부 발포를 거부하다 15
1. 평화로웠던 5·18 전야 17
2. 경찰, 시위 진압에 나서다 (5월 18일 45
3. 무기소산을 지시하다 (5월 19일 71
4. 부상자 치료에 주력하다 (5월 20일 108
5. 지휘부, 광주비행장으로 옮기다 (5월 21일 117
6. 광주시민들께 감사하다 (5월 22일~25일 148
7. 보안사, 고문과 직위해제 (5월 26일~6월 13일 174
2부 대한민국 ‘경찰영웅’이 되다 185
1. 투병생활 187
2. 사망, 그리고 청문회 200
3.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기까지 213
4. 대한민국 ‘경찰영웅 제1호’ 230
3부 군인에서 경찰로 전직 239
주석 227
참고문헌 299
에필로그 305
부록
안병하 연표 313
안병하 비망록 319
안병하 치안감은 누구인가
안병하 치안감은 육사 8기로 군에 입문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등 안병하의 동기생들은 5·16 군사정변 당시 주력군으로 참여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 2개와 상이기장, 6·25 참전기장 등을 수훈했으며, 1962년 11월 총경으로 특채돼 경찰에 투신했다. 경찰 입문 9년 만인 1971년에 경무관으로 승진한 뒤 치안국 소방과장, 방위과장을 지냈고, 강원도 경찰국장, 경기도 경찰국장을 거쳐 1979년 2월 20일 전라남도 경찰국장으로 발령받았다. 1980년 5.17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동시에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무자비한 시위진압을 하자 여기에 맞서 경찰 무기를 미리 대피시키고, 상부의 강경진압 지시 등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다. 광주진압 하루 전인 5월 26일 그는 ‘직무유기 혐의’로 보안사 요원들에 의해 합동수사본부에 강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8년을 투병하다 1988년 10월 10일 60세 나이로 사망했다. 이후 유족들의 지난한 명예회복 과정을 거쳐 안병하 경무관은 2017년 경찰청이 처음 시행한 ‘올해의 경찰영웅’ 제1호로 뽑혔으며, 2017년 11월 뒤늦게 치안감에 추서되었다.
5월 15일,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의 방문
“거 참, 어제는 박관현이라고 하는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날 찾아 왔는데 그 친구 참 똑똑합디다. 날더러 학생 시위를 허락해달라는 거요.”
책은 5월 15일,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안병하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박관현이 경찰국장실로 찾아간 것은 15일 오전 10시 무렵이다.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어요. … 경찰국장과 만나서 나눴던 이야기와 반응을 자세히 들었는데 상당히 놀랐습니다. 당시 안병하 국장은 우리의 제안에 대하여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청 앞 집회를 평화적으로만 진행한다면 경찰이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어요.”
전남대 총학생회 기획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