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고증과 현장 답사로 번역과 지명 등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다.
“난중일기의 현장에서 이순신을 만나다.”
《난중일기》해독의 역사는 220여년 전 조선 정조 때부터 시작되었다. 1792년 어느 날 정조가 이순신의 전기인 《이충무유사》의 노량해전 기사를 읽고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득공과 윤행임에게 해독을 명하였다. 이때 《난중일기》에 대한 해독작업을 하면서 원문에 대한 교감(校勘도 이루어졌다. 교감이란 전문학자가 고전 번역의 기초단계에서 표준화된 정본을 만들 때 먼저 원본과 이본의 오류를 수정하는 작업이다.
그후 1795년 최초로 해독된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가 활자로 간행되었다. 여기에는 긴 내용을 요약하거나 음과 뜻이 서로 비슷한 한자를 차용하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한자의 동음가를 이용한 가차법을 적용했다. 이는 옛날부터 통용된 한자표기방법으로 해독된 글자가 원본과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를 오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감을 해야 한다. 이러한 판본 상황을 저자는 《난중일기》원문책자에 일일이 밝히고 원본의 글자대로 모두 수정했다.
이에 앞서 1693년 이후 《난중일기》의 일부를 초록한 《충무공유사》의 〈일기초〉가 있었는데, 분량이 적어 이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새로운 일기 32일치와 일부 정확한 내용들을 《교감완역 난중일기》에 처음으로 삽입하여 합본하였다. 새로운 일기 속에는 이순신의 부친이야기, 화룡꿈, 권율과 원균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 등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1935년 일본인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사편수회(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淸德 회장에서 《난중일기》전편을 다시 해독하여 《난중일기초》를 간행했다. 이는 전서본보다는 진전된 작업이었으나 여기에는 오독·미상의 글자들이 다수 남아 있었다. 필자가 이를 모두 해독하여 학계에 보고했는데, 특히 난해한 글자는 고전과 초서전문가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