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 왜 지금 오웰인가? ? 005
이른 나이에 눈뜬 차별 ? 019
대영제국의 추악한 이면을 엿보다 ? 033
속죄의 길, 밑바닥으로 ? 045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길 ? 055
희망을 엿본 자의 업 ? 069
스페인 혁명의 좌절 ? 081
거짓에 맞서다 ? 093
파시즘과의 전쟁에 중립은 없다 ? 105
전체주의에 저항하다 ? 119
기억하라, 이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 131
쓰는 인간, 오웰 ? 147
참고문헌 ? 156
사회적 약자의 친구가 되다
영국의 식민지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제국 경찰로 근무하며 오웰은 제국주의의 끔찍함을 느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오웰은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던 영국은 식민지에서는 압제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과 식민지 정책의 부당함을 깨쳤다. 식민지 주민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인간에 대한 모든 형태의 지배는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오웰은 억압받는 사람들, 밑바닥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식민지에서의 경험을 통해 피착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오웰은 영국의 노동계급에 주목했다. 오웰이 보기에 잔혹한 자본주의 사회인 영국에서 압제에 신음하고 착취당하는 이들은 노동계급이었기 때문이다. 1928년 초 오웰은 자신이 좋아하던 작가 잭 런던이 그랬던 것처럼 영국 런던의 빈민가로 향했다. 노동계급의 처지나 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가난과 빈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던 오웰은 구걸을 하고 부랑자 숙소를 떠돌아다니며 부랑자와 걸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다. 그 시절 오웰은 “계급을 가르는 벽이 무너져 내리는 같았”고, “해방감과 모험심을 맛봤”으며, “아주 행복”했다고 말한다.
파리와 런던에서 극빈자로, 또 부랑자로 살면서 오웰은 가난에 대해 통찰할 수 있었다. 오웰은 빈민과 빈민이 아닌 사람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점, 빈민이나 걸인은 사회적인 쓰레기가 아니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차별하고 비하하거나 경멸할 근거가 없다는 점, 가난한 자의 “인격을 파탄시킨 것은 나쁜 성품이 아니라 영양실조”라는 점,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보수적인 사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민중들을 위험한 존재들이라고 겁내기 때문”이라는 점 등을 깨달았다. 그것은 계급적 편견을 깨는 일임과 동시에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는 경험이었다. 스스로 택한 빈민, 또 실업자로서의 생활을 통해 오웰은 피착취자로서의 노동계급을 인식하며 사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스페인 내전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오웰은 그해 12월 스페인으로 향했다. 신문기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