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프롤로그: 내셔널리즘과 격투하는 젠더
제1부 내셔널리즘과 제국의 은막 스타
제1장 1935년 최승희, 제국 일본 무용계의 여왕으로 등극하다
제2장 1941년 리샹란, 관객이 일본극장을 일곱 바퀴 반 에워싸다
제3장 1935년 레니 리펜슈탈, 〈의지의 승리〉로 히틀러를 영웅화하다
제4장 1939년 마를레네 디트리히, 미국으로의 망명을 감행하다
제2부 국가와 예술, 그리고 전쟁의 브리콜라주
제5장 1955년 최승희, 북한 최고 인민배우 칭호를 받다
제6장 1974년 야마구치 요시코, 자민당 참의원에 당선되다
제7장 1974년 레니 리펜슈탈, 《누바족의 최후》가 최고의 걸작으로 선정되다
제8장 2002년 마를레네 디트리히, 독일 명예시민으로 추서되다
에필로그: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주
참고문헌
‘조선의 이사도라 던컨’으로 불린 무용가 최승희
불과 16세의 나이에 일본의 신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문하에 들어간 후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반도의 무희이자 제국 일본의 무희로서 당대에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대동아공영’을 위한 일제의 프로파간다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전후 친일 혐의를 받고 월북했다. 이후 북한의 김일성 유일체제를 위한 프로파간다에 충실히 임하며 북한예술인 최고의 영예인 ‘인민배우’로 거듭났다. 남편 안막의 숙청과 함께 몰락한 후 잊혔으나 1990년대에 복권되고 2000년대 들어 한국 신무용의 선구자로 남북한 모두에 주목받았다.
‘만영’의 간판스타 리샹란 혹은 야마구치 요시코
중국에서 태어난 일본인 소녀 야마구치 요시코. 어린 시절 만주국 이데올로기인 ‘오족협화’의 상징이 되어 중국인 리샹란으로 활동하며 영화배우이자 가수로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일본 패망 이후 중국인 친일파로 몰려 처형당할 위협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야마구치 요시코로 회귀하여 일본에 돌아왔다. 오랜 방황 이후 르포 작가, 방송진행자를 거쳐 정계에 입문한 뒤 3선 참의원을 지내며 국제 평화주의를 위해 힘썼다.
‘나치의 핀업 걸’로 회자된 레니 리펜슈탈
〈의지의 승리〉, 〈올림피아〉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자 동시에 나치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히틀러의 영웅화에 공헌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범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으나 그녀의 나치 혐의를 둘러싼 무수한 소문이 그치질 않았다. 이후 아프리카로 건너가 아직 문명이 들어오지 않은 원시부족의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진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개척했다. 무용수, 영화배우, 영화감독, 사진작가, 그리고 스쿠버다이버로서의 삶을 살았던 레니는 101세를 일기로 운명할 때까지 나치 혐의를 부인했다.
할리우드의 섹시 심벌 마를레네 디트리히
독일 태생의 영화배우로서 당대의 섹시 심벌이었으나, 나치가 집권하자 히틀러의 제3제국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후 연합군을 위한 위문공연 무대에 올랐다. ‘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