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1960년 1월, 당시 47세였던 카뮈는 남프랑스 루르마랭에 있는 자기 집에서 출판인 가스통 갈리마르의 조카 미셸과 그의 부인 자닌, 그리고 그의 딸 안과 함께 새해 첫날을 함께 보냈다. 1월 2일, 카뮈의 아내 프랑신과 두 자녀는 파리행 열차를 탔지만, 카뮈는 미셸 갈리마르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미셸의 차는 강력하고 호화스러운 모델 파셀 베가였다.
그들은 도중에 투아세라는 작은 마을에서 밤을 보냈고, 1월 4일 아침 파리를 향해 떠났다. 리옹과 상스를 잇는 6번 국도를 탔다가 상스에서 파리로 향하는 5번 국도로 갈아탔다. 운전석에는 미셸, 옆자리에는 카뮈, 그리고 뒷좌석에 자닌과 안, 그리고 강아지 플록이 타고 있었다. 프티-빌블르뱅을 지날 때 빠르게 달리던 자동차는 갑자기 도로를 벗어나 가로수를 들이받았고, 두 번째 나무를 또 들이받으며 박살이 났다.
당시는 제한속도가 없던 시절이어서 신문기사에 따르면 차는 시속 180킬로미터로 달렸다. 운전자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을까. 창밖으로 흘러가는 가로수를 보며 간질 증세를 일으켰을까. 혹은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이자 전문가의 검증이 밝혔듯이 과속 때문에 바퀴가 터졌던 걸까. 카뮈는 사고 현장에서 즉사했고, 심하게 다친 미셸 갈리마르는 엿새 뒤에 사망했다. 그의 아내와 딸은 살아남았고 동승했던 개는 실종됐다.
원고
주변 수십 미터 반경으로 흩어진 차의 파편 사이에는 별로 남은 것이 없었다. 그나마 가죽 가방 하나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안에는 니체의 『즐거운 지식』과 두 권의 노트, 그리고 ‘최초의 인간’이라는 제목이 붙은 원고 144매가 들어 있었다. 죽기 전 몇 달간 카뮈는 알제리의 프랑스인들을 소재로 대서사시 같은 이 소설 집필에 매달렸다. 남편을 잃은 프랑신 카뮈는 1961년 여름부터 이 원고를 타이프로 치기 시작했다. 원고는 일차 대전이 일어난 지 몇 주 만에 사망한 동부 알제리 출신 농업 근로자였던 아버지의 자취를 찾는 작가 자크 코르므리의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