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이 다스리던 신라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문무왕이 바다에 묻혀야만 했던 수수께끼를 풀려면 먼저 그때의 신라 사정을 알아야 한다. 당나라에서 만들어진 역사 지도엔 고구려와 백제가 당나라의 땅으로 나타나 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당나라는 신라와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뒤, 백제의 옛 땅에는 웅진도독부를, 고구려의 옛 땅에는 안동도호부를 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라에도 계림 도독부를 두어 신라의 왕을 대도독에 앉히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당나라는 한반도를 집어삼킬 속셈으로 끊임없이 신라를 괴롭혔지만, 신라는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신라가 당나라를 먼저 공격해서 두 나라는 삼국 시대를 통틀어 가장 큰 전쟁을 벌인다. 그것이 바라 7년에 걸친 긴 전쟁, 나당 전쟁이었다.
신라는 마침내 당나라를 깡그리 몰아내는데, 그 싸움이 바로 3만의 신라 군사로 20만의 당나라 대군을 물리친 매소성 전투였다. 신라는 당나라를 몰아내고 고구려의 옛 땅인 대동강과 원산만 언저리를 다시 찾았다. 만일 신라가 나당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당나라는 그들의 역사 지도에 한반도를 몽땅 당나라 땅으로 나타냈을 것이다.
나라를 지키고 이어 가려는 문무왕의 마음
문무왕이 바다에 묻힌 까닭은 딱 하나다. 언제 또 쳐들어올지 모르는 당나라와 왜군에 맞서 신라를 지키려는 뜻에서였다. 바다에 묻혀 바다를 지키는 용이 되어서라도 신라를 지키려 했던 것. 당나라와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통일신라의 시대가 열렸다. 삼국 통일의 큰 뜻을 이룬 신라의 30대 문무왕은 전쟁이 끝난 뒤 병을 얻자, 서둘러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그러면서 자기가 죽으면 불교 의식대로 불에 태워 바다에 묻어 달라는 말을 남긴다. 그 뒤, 바다에 묻힌 문무왕은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었고, 신문왕에게 신비한 피리 만파식적을 전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죽어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킨 문무왕의 마음은 그의 아들 신문왕한테도 고스란히 이어져, 통일신라는 빛나는 시대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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