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 시대다. 그러나 글을 통해 전달되는 언어의 매력은 여전히 실재하는 가치라고 저자는 말한다. 음악이나 미술이 시대 또는 양식에 구애를 받을 수밖에 없는 반면, 언어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의미를 전달한다. 2500년 전 공자가 그랬듯이, 그리고 2400년 전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그들이 즐겨 썼던 언어를 형태만 달리할 뿐 의미에서는 변함없는 그대로 지금의 우리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고전을 읽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독서의 효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좋은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고전은 “사고의 보고寶庫”이다. 고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일상에서 볼 수 없었던 인류 역사의 장대한 파노라마와 삶에 관한 풍부한 에피소드와 의미 깊은 사상을 접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고전을 통해서 가치의 전도顚倒를 목격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서 변증법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묵자가 공자에게 이의를 제기했듯이, 예수는 플라톤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니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플라톤과 예수에 대해 자못 거칠게 이의 제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똑같은 말만 해왔다면 인간은 얼마나 따분한 존재이겠는가!
또한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회의懷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철학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에게 회의주의는 지적 편력의 출발점이 되며, 선입관에 빠져드는 것을 막아준다. 반면 회의를 품는 데 인색한 지식인은 지적 포만감에 만족할 따름이다.
책을 읽는 목적은, 우선은 자신의 식견과 안목을 높이는 데 있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쿨cool해지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쿨해진다’는 것은 냉정해진다기보다는 냉철해진다는 의미로, 세상을 등지는 게 아니라 세상과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걸 뜻한다. 그렇다면 독서는 일종의 ‘구도求道 행위’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처럼 저자는 구도 행위와도 같은 독서를 통해,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