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멸치잡이 마을이 보여주는 치유의 힘
-순지 이야기
순지네 마을은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방식으로 멸치를 잡으며 살아왔습니다. 멸치 철인 봄, 여름, 초가을이면 마을 전체가 분주해집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아주머니들에게 말을 걸고 뭐라도 거들었을 순지가 어쩐지 조용합니다. 순지와 늘 함께였던 삼촌이 전쟁에 나갔기 때문입니다.
삼촌이 전쟁에 나간 뒤 순지는 매일 바닷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오릅니다. 이 언덕에서 삼촌은 멸치 떼가 들어오나 살피고, 멸치 떼가 들어오면 징을 쳐서 마을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곤 했거든요. 순지는 맨발로 바닷가를 뛰어다니던 삼촌이 눈에 선합니다. 어쩌다 발을 다쳐도 “순지야, 발은 다칠수록 단단해지는 거야.”라며 빙긋 웃던 삼촌이 그립습니다. 삼촌이 치던 크고 우렁찬 징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삼촌이 없는 멸치 철은 허전하기만 합니다.
-삼촌 이야기
전쟁에 나간 순지의 삼촌은 하루도 고향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징 대신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두렵고 끔찍하기만 했지요.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가라는 해산 명령에 다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삼촌. 하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마을 사람들과 가족의 품 안에서도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직 전쟁 속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매일 밤이면 괴로웠던 전쟁의 기억이 반복적으로 삼촌을 찾아옵니다. 한 가족처럼 지냈던 마을 사람들의 격려에도 선뜻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가 무섭습니다. 다친 다리는 상처가 아물어 가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겁이 납니다.
언제나처럼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어 몸서리치던 어느 날, 가을바람이 방문 틈새로 들어옵니다. 가을 멸치 철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삼촌 입에서 저도 모르게 멸치를 잡을 때 부르던 ‘후리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자기도 모르게 읊조린 가락에, 삼촌은 그제야 진짜 집에 돌아온 것만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며칠 뒤 멸치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알리는 징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침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