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권운동에 나서다
진은 미국 남부에서 민권운동이 발아하기 시작한 때부터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저항했다. 1956년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흑인 여자대학 스펠먼대학에 교수로 부임한 후 직접 겪은 남부 백인들의 뿌리 깊고 적대적인 인종차별은 머리로만 알고 있던 인종차별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1956년 11월 미 대법원이 버스노선에서 인종차별 정책을 불법으로 규정했음에도 식당과 호텔, 법정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인종분리가 여전하자 진은 1959년부터 학생들과 함께 ‘앉아 있기 운동’을 벌였다. ‘앉아 있기 운동’은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학생들은 식당과 극장, 도서관 등 백인 전용 좌석 등에서 앉아 있기 운동을 벌였고, 끊임없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진 부부도 흑인 학생들과 함께 식당에서 앉아 있기 운동을 펼쳤다. 1960년부터 남부 100개 도시에서 ‘앉아 있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진의 집에서는 연일 학생들의 모임이 개최되었다. 진은 학생들을 지원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남부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던 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의 민권운동에도 참여했다. 그 결과 처음에는 공공 도서관이, 1961년 무렵에는 애틀랜타의 수많은 식당이 인종분리를 없애게 되었다.
1960년대의 민권운동을 통해 진은 ‘저항’의 의미를 새롭게 다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정부에 저항하고 법에 맞서 싸워야만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못된 정부 정책을 돌려세우는 일에도 저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진은 소수의 권력자들이 다수의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전쟁을 저지하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반전운동에 나서다
베트남전쟁 발발 초기부터 진은 이 전쟁에 의구심을 가졌다. 1964년 8월 2일과 3일 두 차례에 걸쳐 북베트남의 어뢰정이 통킹만에서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를 공격했다는 사실과 이 전투로 말미암아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의 명령으로 8월 4일 북베트남을 폭격하고 8월 7일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