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의 글 |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기획하며 - 정출헌
머리말 | 새로운 시대를 열망했던 한 젊은 이상주의자와의 만남
1장 연산군 10년, 엄동설한에 휘몰아친 광풍
갑자년 동짓달, 어느 부자의 참극
양화나루에서 함께 한 젊은 벗들
신진사류와 훈구공신의 얄궂은 운명
2장 어린 성종의 즉위와 새 시대를 향한 기대
불안과 희망으로 출발한 새로운 시대
김시습의 귀환과 신진사류의 공감
남효온의 유년과 그의 젊은 벗들
김종직의 『소학』 교육과 시대정신
3장 한 장의 상소가 불러일으킨 파문
흙비와 구언, 그리고 젊은 유생의 상소
조정을 뒤집어놓은 남효온의 소릉복위 상소
사제(師弟의 명분, 훈구공신의 노회한 반격
구언상소 이후, 뜻을 함께 했던 젊은 동지들
4장 『육신전』의 집필과 역사 바로 세우기
남효온의 꼿꼿했던 결기와 시대정신
남효온이 『육신전』을 기록하던 즈음
과거를 바로잡는 서사적 증언, 『육신전』
『육신전』에 밝혀둔 그날의 오명(汚名들
5장 폭음으로 견뎌내던 시련의 시절
벗들과 흥겹게 어울리며 지내던 한때
함께 했던 벗들의 부재, 살아남은 자의 폭음
절주(絶酒를 둘러싸고 벌어진 우정의 논란
6장 신진사류의 좌절과 삶의 전회(轉回
남효온을 비롯한 신진사류들이 추구한 삶
성균관 풍자시의 파문과 흔들리는 마음
과거공부의 포기와 은거생활의 선택
경지재에서의 침잠과 성리학으로의 전회
7장 금강산 유람과 성리담론의 집필
김시습과의 재회, 그리고 영원한 이별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맛본 금강산 유람
금강산의 여정에서 만난 많은 인연들
성리담론의 본격적 집필과 논쟁의 시대
8장 절절하게 읊은 시편과 울울했던 송도 유람
비통하게 읊조린 한 해의 간난의 시편
가뭄, 언문투서, 그리고 김종직의 좌천
스승을 향한 제자들의 날 선 비판들
벗들과 함께 한 울울했던 송도 유람
어린 성종의 즉위와 새 시대를 향한 기대,
그러나 현실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던 모순의 시절
남효온(1454~1492은 조선 전기의 유교 지식인으로, 매월당 김시습과 더불어 ‘생육신’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가 젊은 유생으로서 정체성을 갖춰나가던 15세기 중반 무렵은 조선의 태평성대를 구가했다고 일컬어지는 제9대 국왕 성종이 치세하던 시절이었다. 그 이전까지 조선은 개국 이후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친족 간에 살육이 난무하는 극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세조의 왕위찬탈 쿠데타인 계유정난이다. 반정이 성공하자 공을 세운 이들은 세조 이래 수십 년 동안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다. 한명회, 권람, 정인지, 정창손 등으로 대표되는 훈구공신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성종 재위 기간에도 원로대신으로서 자신들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정국을 주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이들이 성종을 왕위에 오르게 만든 배후의 인물들이자 어린 성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원상제’라는 집단지도체제로 어린 임금을 에워싸고 정무를 대신 돌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주체였기 때문이다. 1469년,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이 왕위에 오른 지 불과 1년 2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훈구공신들은 왕실 최고 어른이었던 정희왕후(세조의 비의 승인을 얻어 일사천리로 왕위계승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당시 열세 살에 불과하던 잘산군(성종이 반나절 만에 후계자로 지목되고 보위에 오르게 된다. 왕실 내 왕위계승 서열 3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잇게 된 성종의 장인이 당시 최고 실세였던 한명회였던 것은 굉장히 공교롭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어린 성종은 세자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왕위에 급히 올랐기 때문에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수렴청정과 원상제라는 비정상적인 정치체제 아래에서 임금 노릇을 해야 했다.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는 듯했으나 아직 새로운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훈구공신들의 위세는 여전했다. 아니, 날로 강고해지고 있었다.
조선 유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