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작가의 말
15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두려움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27 누가 메데이아에게 돌을 던지랴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39 추함, 아름다움을 굴복시키다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49 누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가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61 흰 목덜미 위의 검은 손
셰익스피어 〈오셀로〉
73 가장 나쁜 죄, 위선
몰리에르 〈타르튀프 혹은 위선자〉
85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는 것
G. E. 레싱 〈현자 나탄〉
97 혁명은 무엇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G. 뷔히너 〈당통의 죽음〉
109 19세기 초, 유럽의 내면 풍경
G. 뷔히너 〈보이체크〉
121 제발 숨 막혀, 인형이 되긴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133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리
안톤 체호프 〈벚꽃 동산〉
143 나는 잘못이 없네, 잘못은 대지에게 있을 뿐
F. G. 로르카 〈피의 결혼〉
157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무엇을 모르는가?
B. 브레히트 〈갈릴레이의 생애〉
169 제발, 연극에 몰입하지 마시기를
B. 브레히트 〈사천의 착한 여자〉
181 우리는 과거를 잊으려 하지만, 과거는 우릴 잊지 않는다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191 욕망의 종착역
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201 아버지는 죽지 않는다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213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카니발
장 주네 〈하녀들〉
223 고도는 오는가? 언제 오는가?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223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정신병동에 갇힌 이유는?
F. 뒤렌마트 〈
스물네 편의 희곡을 읽다
스물네 편의 감동을 쓰다
〈오이디푸스 왕〉은,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며 앎의 가장 높은 경지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일에 실패한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결국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적 철학은 이렇게 앞선 비극의 세계와도 만난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 자신을 알게 되는 두려움이 서양 연극의 위대한 고전이 주는 교훈이다.
문학작품에 배치된 위대한 논쟁들은 한 구절 한 구절 독자로 하여금 숨을 멎게 하고 식은땀을 흘리도록 한다. 셰익스피어의 솜씨는 이런 부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 등장하는 브루터스와 안토니의 연설 장면은 이 희곡의 고갱이를 이룬다. 뷔히너의 희곡 〈당통의 죽음〉에 펼쳐지는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논쟁도 문학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논쟁 장면들을 보여준다.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우리 시대의 ‘오셀로’를 볼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 ‘알리’는 민족적, 인종적 차별에 질식해 사망하는 북부 아프리카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로 설정된다. 〈오셀로〉가 무어인이 민족과 인종, 피부색에 상관없이 낯선 나라 베네치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성공한 이야기이고 보면, 셰익스피어가 그린 당시의 베네치아가 오늘날 혐오와 차별로 점철된 유럽의 나라들보다 훨씬 개방적인 나라였던 걸로 보인다. 역사는 정말로 진보하는 것일까.
G. E. 레싱의 〈현자 나탄〉은 이미 240여 년 전에 기독교와 유태교, 이슬람교가 근본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고 각각의 민족과 종교의 상이함에 앞서 우리가 ‘인간됨’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레싱이 말하는 ‘인간’은 결과적으로 종교의 근본주의와 인종적 편견을 넘어선 양심과 도덕의 주체를 의미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 수준의 인간을 의미하지만, 굴절된 세상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체현한 사람을 일컫는 일이 되는 것이다.
‘빌어먹을 호텔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