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어머니가 맡았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작가의 전작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사상 투쟁과 혁명, 쿠데타로 얼룩진 격동의 스페인 근대사 속을 헤치고 나온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아나키스트인 그는 스페인 혁명에서 공화파 병사로 참전하여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신념과 열정을 다해 싸웠고, 혁명이 일단락되고 가정을 꾸린 이후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이제 그 이야기에서 어머니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이었던가를 되짚어 보자.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지나치게 종교에 침잠하며’ ‘국가 우선을 가족 우선’으로 바꾸게 한 족쇄, 나이가 들며 상호간의 증오로 결국은 갈라선 존재로만 작가의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격동에서 주목받은 사람들은 스파르타쿠스단의 ‘붉은 로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남성들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문학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맡았던 역할을 상기해 보아도 그녀는 헤밍웨이의 서사에서 이른바 ‘혁명의 꽃’ 역할을 맡은 데 불과했다. 그야말로, ‘영웅담도 비극도 오로지 남성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인 셈이다. 아나키스트 아버지와의 끈끈한 유대감에 자부심을 가진 작가가 아버지의 영웅담이자 아버지의 비극을 그린 이야기에서도 어머니는 그저 ‘아버지의 이야기에 종속된’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그것은 온당한 평가였을까? 작가는 자신이 어머니를 매우 과소평가했고, 순전히 아버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했음을 깨달았다. 작가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이러한 안배가 극적인 연출을 위해 일부러 택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행한 선택이라는 점이었다.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간 또 하나의 스페인 현대사
이제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탐구에 들어갔다. 친척과 지인들을 통해 어머니가 그간 거의 털어놓지 않았던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조각을 모으고, 설핏 들었던 사건들의 배경 인물을 조사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작가가 빠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