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방법론을 거부한 과학철학자의 유일한 원리,
“무엇이라도 좋다”(Anything goes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과학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현대 과학철학에 크게 공헌한 학자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의 모든 방법론을 거부했으며, 과학적 지식을 다른 종류의 지식과 구분할 수 있는 어떤 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파이어아벤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사회는 ‘모든 지식이 동등하게 취급되는 사회’였던 것이다.
이 책이 갖는 중요한 의의는 과학 활동과 과학의 진보에 미친 형이상학, 혹은 크게 보아 철학의 역할을 매우 잘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서양의 과학을 받아들이고 독자적인 과학 연구의 성과를 갖기 시작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거나, 새로운 개념 체계를 확립하거나,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것은 이 책의 역자 정병훈 교수가 지적하듯, “새로운 존재론과 형이상학이 과학의 새로운 발견에 미치는 영향을 잘 배우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성이 이른바 초연결 시대라 불리는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일주의적인 방법론에의 집착이 사회 전반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하는 파이어아벤트의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과학 만능주의 시대인 현시대의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한다. 그의 과학철학은 다른 영역에 속하는 아이디어와 부딪치고 검증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재발견의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과학과 사회적·문화적 가치의 상호소통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한 이론의 테스트는 단순한 경험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서로 상반되는, 혹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이론의 맞부딪힘이 필요하다. 즉 이론은 사실에 의해서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론에 의해서 검증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새로운 존재론의 필요성과 더불어, 이론과 이론의 대결이 결국 존재론과 존재론의 대결에서 비롯되고, 그로 인해 과학 이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