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장 갈리아인
기원전 387년, 브렌누스와 갈리아인이 로마에 침입하다
기원전 4세기, 공화정 치하 로마는 …
무방비도시에 뒤늦게 성벽을 두르다
2장 고트인
408년, 알라리크와 서고트인이 로마의 성벽 앞으로 진군하다
5세기, 전제정 치하 로마는 …
포룸이 불타고, 서고트인은 제국 내에 영토를 얻다
3장 더 많은 고트인
537년, 비티게스가 동고트군을 이끌고 로마 성벽 아래 모이다
6세기, 전제정 치하 로마는 …
동고트인이 8년 만에 로마에 입성하다
4장 노르만인
1081년, 카노사의 굴욕을 견딘 하인리히 4세가 로마 북서쪽에 진을 치다
11세기, 교황령 로마는 …
하인리히 4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위를 얻고, 기스카르는 로마를 점령하다
5장 에스파냐인과 루터교도
1527년, 카를 5세의 에스파냐군과 독일 용병 1만 명이 로마로 쇄도하다
16세기, 교황령 로마는 …
“로마에 비하면 지옥도 아름다웠다”
6장 프랑스인
1849년, 루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대군이 교황 없는 교황령에 당도하다
19세기, 로마공화국은 …
오합지졸 로마 의용군의 희생이 통일 이탈리아의 포석을 깔다
7장 나치
1943년, 나치 군대가 무솔리니가 실각한 로마로 진격하다
20세기,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
평범한 로마 시민들이 나치 점령과 연합군의 폭격에 대항하다
후기
감사의 말
출처 및 참고 문헌
주
찾아보기
“로마에 비하면 지옥도 아름다웠다”
갈리아에서 나치까지
로마의 운명을 결정지은 7번의 약탈
로마가 겪은 수없이 많은 약탈 중에서 저자는 로마 역사상 중요하면서 동시에 다른 시대와 완전히 구별되는 성격을 지닌 7번의 약탈을 찾아냈다. 그 7번의 약탈에는 기원전 야만족 전투 집단인 갈리아인의 약탈부터 고트 전쟁, 잔혹하고 막대한 피해 규모로 로마 약탈(Sacco di Roma의 대명사로 알려진 1527년 카를 5세 황제군의 침략,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반기 같은 주축국 나치에 의한 로마 점령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의외의 사건도 포함된다.
―기원전 387년, 갈리아인이 로마에 침입하다 고대에 벌어진 약탈은 확장 중이던 공화정 국가 또는 제국에 침입해 온 이민족에 의해 벌어졌다. 기원전 4세기 브렌누스와 벌거벗은 채 괴성을 지르며 “말과 전차를 타고 쇄도해 오는”(17쪽 갈리아인의 괴이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로마군은 “도망치기에 바빴”고 “끔찍한 살육”을 당하며 패배했다. 한편 약탈을 겪은 후 성벽을 세우고 군대를 보강하는 합리적 대응도 이루어졌다.
―408년, 서고트인이 로마의 성벽 앞으로 진군하다 훈족에 쫒겨 온 알라리크와 서고트인에 의해 “살아 있는 것과 죽는 것을 섞는 일을 질색”하는 고대 로마인들이 “도시 내 시체 매장 금지”를 어길 만큼 큰 공포를 겪었다(130쪽.
―537년, 동고트군이 로마 성벽 아래 모이다 장기적인 포위, 그리고 몇 년 후 아틸라가 이끄는 동고트군의 또 다른 포위 공격이 이어지자 성벽 안의 로마인들은 죽음의 납빛을 한 “유령이 따로 없”었고 도시가 텅 비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 번의 약탈을 겪으면서 전리품과 배상금을 빼앗기고 포룸(광장의 주요 시설, 저택과 집합 주택, 교회 건물이 불타고 파괴되었음을 물론이요, 중세까지 전쟁은 성(城이나 성벽에 대한 포위전이었기 때문에 포위 공격이 장기간 이어질 때마다 로마인은 식량난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1084년, 노르만군이 로마 성문 밖에 진을 치다 그런가 하면 8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