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 그것은 베네치아의 고서점에서 시작되었다
2. 바다신과 산신
3. 도대체 여긴 어디란 말인가
4. 돌의 목소리
5. 가난 덕분에
6. 날아가라, 내 마음이여
7. 중세는 빛나는 시대였던가!
8. 천천히 서두르게
9. 여름이 없었던 해
10. 나폴레옹과 도붓장수
11. 신세계에 구세계를 알리며
12. 베네치아의 유랑책방
13. 다섯 사내가 시대를 열다
14. 마을과 책과 유랑책방 상
15. 책장 사이의 사연들
16. 창 너머로
에필로그
부록:‘유랑책방 상’역대 수상작 목록
참고문헌
가난이 책을 불렀다
몬테레조는 밀라노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평야를 한참 달려, 한 번 더 열차를 갈아탄 후에도 자가용으로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도착하는 산간벽지다. 중세엔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요새 역할을 했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여름엔 주변의 농장에 품을 팔아 돈을 벌고, 겨울엔 마을로 돌아와 자급자족하며 지냈다. 그러나 1816년, 이상기온으로 농작물이 전멸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여름이 없었던 해’로 불리는 그해에는 유럽과 북미 각지에서 5~6월에 서리와 눈이 내리고, 섭씨 30도였던 기온이 몇 시간 만에 영하로 떨어졌다. 몬테레조 주민들이 일을 하러 나갈 농지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배고픔과 고달픔에 익숙했던 마을 사람들은 주저앉지 않고 장사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몬테레조의 특산물인 밤, 밤 가루 그리고 성인의 축성이 들어간 성화와 생활달력을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이것이 도붓장사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책까지 팔게 된다. 당시의 출판사들은 대부분 소규모로 인쇄도 겸했는데, 재고를 떠안고 있을 여력이 없었다. 그러자 몬테레조 사람들이 출판사의 재고나 파본을 모아 대신 팔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와 어린 자식까지 데리고 길을 떠났기에 도붓장수 아이들은 ‘책 광주리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저는 열한 살이었어요. 어머니를 따라 멀리 낯선 마을까지 책을 팔러 갔습니다. 부모님은 밀라노에서 노점을 하고 있었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열 살이 되던 여름에 아버지가 광주리를 주셨어요. 얇고 값싼 책들이 가득 들어 있었죠. 광주리를 메고 해변으로 가서 해수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팔아오라고 하셨어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집에 가면 바로 창고에서 손수레를 꺼내 균일가의 헌책을 넣어 팔면서 돌아다녔어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처치 곤란한 것을 대신 판매해주니 고마웠고, 서민들의 경우 접근이 어려웠던 책을 싼값에 사볼 수 있어 반가웠다. 그때까지도 책은 두껍고 비쌌으며, 무엇보다 지식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