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7
일러두기 ●12
제1장 서론 ●13
제1절 연구 목적 ●14
제2절 연구 방법 및 연구사 정리●20
1. 연구 방법 ●20
2. 연구사 정리 ●23
제3절 연구의 한계점과 씨족제도 관련 한중 역사 용어 비교 ●39
1. 연구의 한계점 ●39
2. 씨족제도 관련 한중 역사 용어 비교 ●42
제2장 중국의 군망郡望과 한국의 본관本貫 ●45
제1절 중국의 군망제도와 한국의 본관제도 비교
-중국의 청하최씨淸河崔氏와 한국의 남양홍씨南陽洪氏를 중심으로-●46
1. 중국의 군망제도 ●50
2. 한국의 본관제도 ●68
제2절 현대 한자어 사전에 나오는 ‘군망’의 의미 검토 ●99
1. 전거典據에 대한 검토(1 ●100
2. 전거에 대한 검토(2 ●111
3. 군망의 의미에 대한 검토 ●123
제3절 청나라 시기 한 지식인의 시각을 통해 본 중국의 군망제도-청나라 시기 방동수方東樹(1772~1851를 중심으로- ●134
1. 군망에 대한 견해 ●136
2. 군망제도가 사라진 사회적 원인 ●148
제3장 중국의 본관과 한국의 본관 ●161
제1절 한국 본관제도의 기원과 ‘토성土姓’에 관한 제설 검토
-이수건李樹健의 ‘토성분정土姓分定’설을 중심으로- ●162
1. 중국 고전에 나오는 ‘씨성氏姓’의 의미 ●164
2.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토성’과 ‘고적古籍’의 의미 ●173
3. 효문제孝文帝의 ‘정성족定姓族’ 정책과 당 태종의 《씨족지氏族志》 편찬 의미 ●193
제2절 송대 《경원조법사류》에 나오는 본관의 의미 ●213
1. 본적지本籍地와 본적지 관청의 의미 ●217
2. ‘가장家狀’이라는 문서 안에서의 의미 ●228
제3절 송대 《소흥십팔년동년소록》에 나오는 본관의 의미 ●248
1. 본관 기록 방식 ●252
2. 본관의 의미 ●260
제4장 중국의 적관籍貫과 한국의 본관 ●287
제1절 전통기 한중 지방지에 나오는
엄밀한 문헌 고증과 분석으로 기존의 정설을 깨다
저자는 한국인들이 무심코 성씨 앞에 붙이는 본관은 지속되어 오고 그와 유사한 군망이 현대 중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에 착목한다.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우선 한국의 본관 대 중국의 군망, 본관 대 본관, 본관 대 적관籍貫의 의미와 쓰임을 문헌 사료에서 고증하고 성씨사를 상호 고찰한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정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 중국 역사 문헌에 나오는 군망의 뜻이 씨족 구성원들 “원조遠祖의 본적지本籍地”임을 밝혀 현대에 편찬된 한자어 사전에 수록된 군망(“한 군郡 단위 내의 명망 있는 씨족〔望族〕”의 뜻을 그대로 인용한 연구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둘째, 한국 본관제도가 10세기 초 고려에서 ‘토성’을 제정?분배하여 생겨난 것이라는 이수건李樹健의 ‘토성분정土姓分定’설을 재검토한다.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토성’으로 규정하는 성씨가 서로 달랐음을 들어 ‘토성’이 ‘분정’된 성씨들이 아니라 ‘그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들이 소유한 성씨’임을 밝힌 것이다. 저자는 이수건의 연구가 본관제도 출현 과정을 규명하려 한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본관제도는 ‘씨족제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출현했다’(송준호宋俊浩고 본다. 저자의 두 지적 모두 군망, 토성 등이 언급된 양국의 역사 문헌과 기록 일체를 샅샅이 조사, 검토한 뒤에 나온 결론이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기존의 정설을 답습해 온 학계의 안일함을 질타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 또한 적지 않다.
비교사적 이해를 위한 접근
문헌 고증과 그에 따른 정설 비판이 논의를 전개하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면 통사적 추이와 제도사적 접근은 한중 비교사라는 과제 수행의 주요한 방법론이다. 저자는 우선 한국 사학계에서 ‘전근대’라 부르는 시기와 중국 사학계에서 ‘고대’라 일컫는 시기를 ‘전통기傳統期’라고 명명하고, 때로는 통시적으로 때로는 횡적으로 전통과 현대, 중국과 한국, 두 시공간을 종횡무진 넘나